대구도 시범 운영·조례안 제정
'공무원 휴식권 보장' vs '시민 불편'
노조 "점심 휴무가 서비스 질 향상" 주장
"점심시간 민원 집중도 고려해야" 의견도
"점심시간 이후 방문해 주시면 보다 나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에 온전히 식사하고 쉴 수 있도록 하는 '점심시간 휴무제'를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공무원도 마땅히 누려야 할 휴식권과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평일 근무 도중 짬을 내 각종 용무를 처리해야 하는 시민 불만이 엇갈린다. 점심시간 민원 집중도 등 지역별 특수성도 고려해야 할 요소다.
25일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점심시간 휴무제는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이 교대근무 없이 휴무하는 제도다. 통상 지자체들은 평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 등의 편의를 위해 업무 공백이 없도록 점심시간에 조를 짜 교대로 식사한 뒤 복귀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점심시간대 업무를 중단하는 방식이다. 2017년 경남 고성군이 처음 도입한 이래 부산과 울산, 경북 포항·안동, 전남 목포·순천 등 전국 100여 개 지자체가 시행 중이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12월 달서구와 중구의 일부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이후 수성구, 남구, 달성군 등도 시범 운영에 가세했다. 현재까지 큰 혼란이나 시민 불편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2023년 시행 예정이었지만 홍준표 대구시장이 "공무원은 시민을 위해 일하는 조직"이라고 반대하면서 미뤄졌다. 대구 한 구청 관계자는 "점심시간에 쉬어도 민원이 폭증하지 않고, 휴무하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 중"이라고 말했다. 대구 구청장군수협의회는 26일 확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인데, 공무원 노조는 당일 회의장 앞에서 전면 도입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법적 제도화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대구 중구의회는 21일 '대구시 중구 민원실 설치 및 운영 관련 조례안'을 가결했다. 민원실 점심시간을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하고, 구청장 재량에 따라 1시간 범위 내에서 점심시간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 내용이다. 대구 기초자치단체에서 관련 조례안이 통과된 건 대구 북구에 이어 두 번째로, 구체적인 운영 시기와 범위 등은 추후 논의될 전망이다.
시민들은 '공무원도 사람'이라며 대체로 이해한다는 반응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점심시간 대구 중구 한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정모(35)씨는 "웬만한 민원은 인터넷으로 가능하지만 정작 필요할 때 대면 업무를 처리하지 못할까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창현(68)씨는 "밥 한번 편히 먹지 못하는 상황은 이해한다"면서도 "원만한 민원 처리와 시민 불편 해소를 위한 보완 조치도 논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는 점심시간 교대 근무가 도리어 민원 서비스질 하락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일선 공무원들이 점심시간 교대 근무를 하면 공백 없는 민원처리는 가능하지만, 점심시간 이후에도 1시간가량 절반만 근무하게 돼 오히려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청원경찰이 근무하는 본청과 달리 행정복지센터는 방호에 취약해 직원의 안전 문제도 거론한다. 구청 공무원 김모(33)씨는 "악성 민원인이 많은 곳에선 해코지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신규 직원이 많다"며 "민원인의 폭언·폭행이 비일비재하나 인원이 부족한 점심 때는 더더욱 즉각 대응이 어려워 직원들이 행정복지센터 근무를 꺼리는 주요 원인"이라고 털어놨다. 조창현 전국공무원노조 대구지부장은 "전반적인 민원서비스질 향상을 위해서라도 점심시간 휴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별로 점심시간 민원 수요 집중도 등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21년 7월부터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한 광주광역시 5개 구청은 초기 우려에도 불구하고 큰 혼란 없이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안성환 전국공무원노조 광주 동구지부장은 "시민 대다수가 이해해주셨고, 점심시간 민원 수요도 높지 않았다"며 "전 행정복지센터에 무인민원발급기를 설치한 것도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행정 수요가 높은 서울은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현재 서울시청 민원실은 점심시간 교대 근무를 하고 있고, 일선 자치구 역시 구체적인 점심시간 휴무제 도입 논의는 거의 없는 상태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도심 내 행정복지센터는 점심이 가장 바쁜 시간"이라며 "서울 특성을 감안하면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고 했다.